아들러 섬머스쿨(ICASSI)를 다녀오다.

이해중.jpg이해중 (광주운암초등학교 교사)

유래 없이 뜨거웠던 지난 여름. 더위를 피해 피서라도 가듯 특별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바로 독일 본에서 열린 ICASSI에 참여한 것이다. ICASSI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뤄두고, 그 같은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먼저 설명하면, 바로 존경하는 오익수 교수님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님과는 대학원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10여년간을 한 달에 두 번씩 스터디 모임을 가져

왔기 때문에, 왜 이토록 추천하시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또 이번이 아니면 오기 힘들 것 같은 점도 있었다. 참여하는 교수들과 유럽 학생들의 학사 일정에 맞추어 7월 초나 중순에 열리는 것이 이번에는 8월 초로 변경된 것이다. 또 여기에 뜻을 함께한 동료, 가족의 허락이 있어서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덜컥 결재하고 말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ICASSI가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 주리란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ICASSI를 소개해보겠다. ICASSI는 International Commitment of Adlerian Summer Schools and Institute의 약자로 흔히 ‘아들러 섬머스쿨’로 불리운다. 첫 번째 섬머스쿨은 1962년 덴마크에서 루돌프 드레이커스(1897~1972)에 의해 시작되었다.

1아들러
아들러

여기엔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하는 교수, 학생, 상담자, 심리치료사, 교사 등이 참여하여 그간의 연구성과를 나누고 서로 배우는 시간을 가진다. 드레이커스는 ICASSI가 서로 다른 국가를 옮겨가며 개최되길 바랬다. 배움과 성장에 대한 마음이 있는 곳에 가서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바램은 받아들여져, 그의 사후에도 매년 국가를 옮겨가며 개최되고 있다. 주로 유럽과 북미의 국가에서 개최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시아에서는 아직 열린 적은 없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드레이커스란 이름은 아들러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왜냐하면 아들러의 사후에 아들러심리학을 알리고, 아동 지도와 교육장면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세계 3대 심리학자라고 하면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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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커스

레드 아들러’, ‘칼 융’을 꼽는다. 이 셋은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프로이트가 1899년 ‘꿈의 해석’을 펴냈고, 프로이트는 혹독한 비판에 시달린다. 빈의 의사였던 아들러(1870~1937)는 이를 옹호하는 내용의 글을쓴다. 이를 계기로 프로이트에게 ‘빈 정신분석학회’에 초대받아, 1910년에는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프로이트와 달랐던 아들러는 1911년에 공식적으로 결별하게 되고, 또 후에 융과 프로이트가 반목하여 분리되면서, 이른바 세계3대 심리학자와 그에 따른 이론들은 태동하게 되었다. 그중에 아들러의 이론은 드라이커스와 제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되어 오고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 ‘인간중심상담’의 ‘칼 로저스’, ‘REBT상담’의 ‘앨버트 앨리스’, ‘현실치료’의 ‘윌리엄 글라써’ 등도 아들러 심리학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드레이커스는 세계 1차 대전에 의무복무하는 중에 폭력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협력적인 문제해결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전역 후에 정신의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아들러와 함께 빈에 아동상담센터를 세우고 활동하는 등 빈에서 아들러심리학 관련 활동의 리더가 되었다. 하지만 헝가리계 유태인이었던 아들러는 나치의 핍박을 받게 된다. 그래서 1927년 아들러는 미국으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하게 되는데, 아쉽게도 1937년 강의를 다니던 중에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만다. 하지만 브라질 강연이 미리 예정되어 있었고, 드레이커스가 대신 강연을 하게 된다. 이 강연 후에 드레이커스도 미국으로 활동근거지를 옮겨 시카고에 자리를 잡았고, 아동과 교육에 큰 관심을 쏟았다. 그는 1972년에 생을 마칠 때까지 아들러의 이론을 아동상담, 부모교육, 교사교육에 대해 연구하고 적용했다. 그의 노력 중에 바로 ICASSI가 있고, 그 ICASSI는 현재 그의 딸인 에바 드레이커스와 다른 제자들에 의해 계속 열리는 중이다.

ICASSI는 2주의 기간동안 열린다. 프로그램은 1주일 단위로 나뉘어있고, 다시 반일짜리 코스(10시간)와 전일 코스(20시간)으로 나뉜다. 이중에서 나는 첫 번째 1주일 전일 코스에 참여했다. 기본적인 타임테이블은 심플하다. 아침 전체강의(1시간 30분) – 오전 선택강의(2시간) – 오후선택강의(2시간) – 특별 프로그램 순서다. 올해 오전과 오후 선택강의는 각 10강좌씩 개설된다. 첫주와 둘째주의 강의는 모두 다르다. 전체강의 뿐 아니라 선택강의도 대부분 다르다. 참가자들은 이중에서 선택한 강의를 1주일간 듣게 된다. 다만 긴 시간의 강의가 필요한 주제들은 오전과 오후를 둘 다 사용해야 들을 수 있고, 이는 당연히 전일코스 신청자만 들을 수 있다. 대부분의 선택강의는 영어로 진행되고, 개최지인 독일의 특성을 생각해 독일어강좌도 오전오후 각 4개정도씩 개설되었다.

  학회와 달리 ICASSI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진풍경이 있다. 첫 번째는 여러번 참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번에는 35개국에서 참여자들이 왔는데, 사람들이 도착할 때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환대하고, 포옹을 하는 진풍경이 만들어진다. 당연히 처음 참가한 사람이 누군지를 대부분 눈치채고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한다. 다만 처음 온 사람끼리만 모를 뿐이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잠을 못자 피곤한 상태였는데, 시차 적응을 위해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내게 사람들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해리포터 닮았어요.”

이런말 처음 들어봐서 어찌 리액션을 할까 고민하고 있으니 손으로 미간을 가리키며 번개모양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내가 험상굳은 얼굴로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눈치채고는 마음을 놓고 크게 웃어버렸다. 이 뿐 아니라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으면 반드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네고, 식사는 입에 맞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메인 강사분들도 있었는데, 처음엔 붙임성 좋은 아주머니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일종의 배려였음을 깨닫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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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들끼리 모여서 한 협동. 함께 단어를 설명하는 중

두 번째 특징은 아이를 데리고 가족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 여섯살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도 함께 온다. 그래서 가족단위 참가자를 위해서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그래서 매년 장소를 옮겨가며 열리기 때문에 휴가로 이곳을 오는 사람들이 많고, 첫주와 둘째주 사이의 주말에는 근교 관광코스도 함께 열린다. 그래서 일주일을 마치면 혼자서 일주일간 여행계획을 세워두었다고 하니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마치 여기 주말여행 재미있는데 왜 이용하지 않냐고 반문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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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프로그램

미리 계획된 강의 이외에도 특별한 강의도 열린다. 스페셜 프레젠테이션이라 불리는데, 참가자들 중에서 강의를 개설하고 싶은 사람들이 강좌를 여는 것이다. 3일간 한 시간씩 기회가 주어지고, 매일 아침이면 오늘 개설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이 소개된다.

2018년도 ICASSI에는 35개국에서 30명의 강사와 50여명의 아동 및 청소년을 포함해서 300여명이 참여했다. 참가인원은 매해마다 유동적이지만 일반적으로 유럽에서 열릴 때의 인원과 비슷한 정도였다. 장소는 독일의 본(Bonn). 인구 30만 남짓의 도시다. 넓이는 성남과 비슷하지만, 인구밀도는 그에 1/3 수준이다. 과거 서독의 수도였고, 베토벤의 생가가 있는 곳인데, 기적의 라인강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그러나 본에서 요즘 가장 유명한 건 다름 아닌 젤리과자인 ‘하리보’의 본점이다.

캠프가 열리는 venusberg는 중심지에서 30분정도 버스를 타고 나와야 하는 외곽으로 한가하고 유유자적한 마을이다. 유유자적한 이 마을에서 가장 시끄러운 건 다름 아닌 ICASSI였다,

이곳에 참석하는 동안 꽤나 긴 시간 자리를 비워야 했기 때문에 미리 해둘 것들도 있었고, 이래저리 개인적으로 불편한 일들도 생겨 바쁘고 치열한 7월을 보내야했다. 무엇보다 방학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인천공항으로 올라가야했기 때문에 진심으로 피곤했다. 좀 저렴한 항공을 타보겠다고 경유를 두 번이나 했더니 집나온지 36시간만에 본에 도착했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코스는 다름아니라 본에 도착해서 이곳으로 오는 일이었는데, 이곳을 지나쳐가는 버스가 나를 외딴곳에 내려주고 갔고, 큰 도로 가까이오면 택시가 있을 줄 알았는데 30분을 기다려도 택시가 보이질 않은 것이다. 해외 여행을 몇차례 다녀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관광지가 아닌 곳을 찾아가는 일은 처음이었다. 우선 이 도시는 여행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건 당연했다. 여긴 관광지가 아니니까. 한참을 헤매다가 배터리가 4%남았을 때가 돼서야, 도저히 안될 것 같아 택시 앱을 깔고 택시를 불렀다. 시작부터 바짝 긴장. 일행보다 일찍 도착했더니 온통 영어천지. 영어도 잘 못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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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드레이커스와

듣겠는데, 멍하니 있으면 갑자기 독일어를 한다. 이렇게 본격적인 ICASSI가 시작되었다.

가장 다행스러운 점은 날씨가 좋았다는 것이다. 30도가 훌쩍 넘어가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덥다고 힘들어했는데, 습기와 온도가 콜라보를 이루는 곳에서 왔으니 그늘에만 들어가면 천국이다. 다만 이런 더위가 흔치 않아 에어컨이 건물 안에 없는 것은 함정.

이곳에는 총 5명의 한국인이 참여했다. 한명은 대학 교수님, 한명은 초등학생, 그리고 남은 셋은 초등교사다. 강의를 듣고 나면 모여서 커피를 마시면서 강의 내용에 대해서 갈무리하고, 저녁엔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같은 강의를 들으며 친해진 독일인 대학생, 아시아권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루 하루 강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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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전체 강의

매일 아침에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된 전체강의의 첫 번째 시간은 에바 드레이커스(Eva Dreikhurs)의 강의였다. 주제는 ‘아들러심리학과 공동체’. 에바 드레이커스는 드레이커스의 딸이다.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발전계승시킨 일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이 강의에서 에바 드레이커스는 이 강의에서 ‘Gemeinschaftsgefühl’을 강조했는데, 둘째날의 강사인 지빗 아브람슨(Zivit Abramson)도 ‘사회적 관심과 사회적 평등’에서 동일 개념을 강조했다.

아들러에 의해 처음 사용된 이 말은 ‘공동체’ 또는 ‘지역사회’를 뜻하는 ‘Gemeinschafts’와 ‘감정’을 뜻하는 ‘gefühl’의 합성어이다. 공동체에 공헌하고자 하는 마음 또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란 뜻이다. 이 말을 영어권에서 social feeling 이나 community feeling 으로 번역하다가 social interst란 말로 합의했다. 국내에서는 ‘사회적 관심’으로 사용한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인간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할 만큼 이 개념은 아들러 심리학의 가장 핵심개념에 해당한다.

아들러와 드레이커스는 사회적관심은 인간을 뿔뿔히 흩어진 존재로 보지 않고, 사회를 이루고 협력하는 존재로 보았다. 자연 상태에서는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만들었고, 거기에서 문화가 생겼다. 어떤 인간도 가족을 벗어나 태어나는 인간은 없기에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이다. 심지어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미 선조들의 공헌으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고 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는 가정과 다른 의미의 공동체이고, 가르쳐지는 내용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들이다. 심지어 가장 원초적인 ‘언어’와 그 언어의 기저에 흐르는 ‘논리’역시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관심을 증진시킨다는 것은 공동체에 공헌하게 되는 것이고, 부모와 교사는 다음세대가 높은 사회적 관심을 가질 수 있게끔 안내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은 영어강의가 아주 잘 들린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전체강의에서는 ppt의 도움을 받고, 전공용어들이라 이해가 보다 쉬웠다. 아주 훌륭한 강의였고, 놀랍도록 깔끔했다. 한시간 동안 아들러 심리학이 핵심을 이야기하라면 저렇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러나 어떤 면에서 나는 이 강의의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이미 책에서 읽었거나 고민해본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를 듣는 동안 마음이 혼란해졌다. 내가 여기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사회적 관심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의문을 풀고자 왔는데, 아들러 공부를 처음 할 때처럼 계속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해볼 틈도 없이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오전 선택 강의는 ‘아동과 청소년에게 사회적 관심을 증진시키기’라는 강의였다. 이 강의의 강사인 베티(Betty Bettner)가 쓴 ‘Responsiblity in the Classroom’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름 자신만만했는데 강의에 들어가자마자 바람빠진 풍선마냥 쪼그라들었다. 두 시간씩 다섯 번의 수업동안, 토의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 것이다. 일종의 집단상담처럼. 베티가 간단한 설명을 하고 질문을 하면, 20명이 넘는 사람들은 둘 셋씩 나뉘서 자신의 경험과 어려움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에서 베티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Q. 사회적 관심에 대해서 자신만의 언어로 정의해보라.

Q. 어린 시절의 경험 중에서 소속감을 느낀 일을 이야기해보라

Q. 내가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느낀 적은 있는가?

Q.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Q. 어릴 적에 다른 사람이 존재감을 가지도록 도움을 준 경험이 있는가?

Q.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그룹과 상의해보라.

Q.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 그룹을 만난 경험이 있는가? 그때의 감정은 어땠는가?

Q. 부모의 양육유형에 대해서 설명해보고, 각각의 유형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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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와 함께(좌), 베티의 강의 모습(우)

만약 이 질문에 대해서 한글로 물어봤다면 어느 정도의 대답을 할 수 있었을텐데, 서로 다른 수준의 지식과 영어실력을 가진 다국적의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상대가 말을 이해했는지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그룹토의는 ‘지금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였다. 직업으로서 개인 상담을 하고 있지만 정작 나의 아이와 겪는 갈등에 대한 어려움을 나누는 모습에서 눈물이 날 뻔했다. 아들러 심리학을 오랫동안 공부해왔다고 하지만 교실에서 날마다 좌절하고 실패하는 내 모습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순서가 되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정말 어렵고, 강사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남미권 아주머니께서 남미억양으로 내 눈을 보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들은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서로 배우고 있는거에요. 눈빛, 분위기, 태도 같은 것들 말이에요. 언어가 어려워서 방해가 된다면, 귀를 닫아버리고 다른 것들을 충분히 느끼면 어떨까요?”

따뜻하고 고마운 조언이었다. 그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15분 남짓이었는데 이야기를 더 오래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다른 고민에 대해서 우리들은 강의시간 외에 이야기를 더 나누자고 약속했다. 그 뒤로 마음이 조금 달라져서 강의를 달리 듣게 되었다. 그렇다. 이 강의 내용은 이미 책으로 보았고, 돌아가서 다시 천천히 곱씹을 수 있으니 지금 이 자리에선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10시간의 수업이 끝나며 진심으로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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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함께

오후 선택 강의는 아들러리안 사례개념화. 강사는 책의 저자인 존 스페리(Jon Sperry)였다. 그의 아버지인 렌 스페리와 함께 펴낸 책인 ‘사례개념화 –이해와 실제’는 국내의 상담심리학 수업들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책이 되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교수님과 다른 선생님 한분이 함께 들었기 때문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돌아가서 한글 책으로 강의 내용을 복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놓였다. 하지만 오전 강의와는 달리 이번에 직접교수를 하고, 질문을 받고 응답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PPT가 있었지만 생소한 용어들이 많고, 전문상담자로써 내담자를 만나고 있지 않은 나에게는 다소 어려운 수업이었다. 책의 소개를 빌려 소개하자면, 상담자가 내담자를 만나서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일련의 단계로 구분하는 활동이다. 건물로 치면 일종의 청사진이고, 기계로 치면 일종의 매뉴얼이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딱딱할거라 예상했는데, 매뉴얼도 만든 사람에게 직접 들으니 연애편지나 에세이처럼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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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페리 수업이 끝나고

1주일이란 시간이 정말 시간이 빨리 갔다. 해가 긴 탓에 저녁에 시내 나들이도 다녀오고 맥주도 마시면서 토론했던 탓도 있지만, 반복되는 패턴에 익숙해진 것도 한 몫 했다. 금요일 오후엔 첫주 코스의 폐회식이 열렸다. 아침에 아동프로그램의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종이배를 접고 거기에 인사말을 적어줬다.)을 줬는데, 폐회식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청소년코스의 아이들은 나와서 소감발표했다. 에어컨이 없는 공간에 전체가 모여있자니 덥기도 했는데, 아이들을 충분히 기다려 준 일은 참 감동적이었다.

나는 이 일주일 동안 아들러심리학분야의 전문가를 만났고, 그동안 읽어오고 공부해오던 책의 저자를 만났다. 최신 연구 경향이 어떤지도 살필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더없이 친절했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진지하고 적극적인 토론이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와서 가지게 된 많은 의문들은 해결되었을까?

모든 질문은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로 모였고, 그에 대해 ‘아들러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해결하고자’였음을 답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은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결론에 해당한다.

아들러심리학을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글과 현실사이의 괴리감이었다. 특히 ‘민주적인 교사’를 생각 할 때면 구체적인 상이 없었다. 그나마 지도교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태도가 가장 민주적인 것에 가까웠지만, 근무해야 하는 지역-학교-학급에서의 모습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은 일종의 ‘조각하기’였다. 커다란 돌을 조금씩 정으로 쪼아가듯, ‘비민주적인(권위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업은 얼마나 해야 할지 애매하고, 매년 만나는 아이들이 달랐기 때문에 언제 완성될지 요원하기만 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교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러나 학급을 세워가는 과정은 조각보다는 ‘소조’에 가까웠다. 기둥을 세우고, 위치를 잡고 조금씩 정교하게 하나의 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려면 머릿속에 청사진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떠올리는 상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 모습을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적어도 그동안 읽어온 아들러심리학의 서적들에서 이야기하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책에서 이야기했고 여기에서 보여주는 모습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적어도 같은 출발선을 경험했다는 점이 중요하리라 본다. 이런 점은 나 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권 교사나, 동유럽 참가자분들도 비슷하게 느끼는 듯 했다.

금요일 오전 선택 강의가 끝나고 나서 참가자들은 어떤 것을 배웠는지, 또 다른 참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영어권이 아닌 사람들은 다들 한결같이 ‘언어의 어려움’, ‘따뜻한 분위기’, ‘진지하고 열띤 논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마도 이번 ICASSI가 우리 모두에게 지니는 의미는 공통의 경험에서 오는 기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그동안 해오던 일들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면서 스터디에서 펴낸 ‘격려하는 선생님’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생각났다. ‘이 책은 격려를 말이 아닌 국내 사례로 소개하고 싶었고, 이미 많은 격려를 하고 있는 분들께 그 격려의 원리가 무엇이었는지 알려드리고 싶다.’는 내용이다. 이번 ICASSI를 통해서 같은 감동을 받았다. 자신들의 책을 통해서만 알려진 것들을 적용하고자 노력해온 나와 스터디 선생님들을 등을 떠밀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놓치고 있던 것들을 직접 보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앞으로 대한민국의 상황에 맞는 현장연구에 대한 책임은 더 커진 것 같았다. 또 ICASSI의 배움을 소화시켜서 다른 분들에게 소개할 책임도 생겼고 말이다. (지금 이 글도 그런 활동의 작은 시작이다.)

내년 ICASSI는 2019년 7월 14일부터 27일까지 루마니아의 아름답고 역사적인 도시 ‘시비우’(Sibiu)에서 열린다. 이 글을 읽고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분들이 있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은 단연 언어다. 충분히 듣고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실력. 그러나 완벽하게 준비하고 오려면 도무지 올 수가 없다. 기회가 되고,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일단 결정해서 불씨를 살리고 준비하면서 부족함을 메꿔가면 된다. 처음은 누구나 다 어려운 법이다. ICASSI에서 제일 처음 들었던 말을 옮겨 적으며 체험기를 마친다.

There is always confusion at first – new place new people, new languages, new cultures. Be willing to ask for help and to offer help. Working together makes it work really well.

추신. ICASSI에 참가하면서 어디에서 이런 분위기를 봤는데 어디서 느꼈지를 한참 생각했는데 다름아니라 실천교육교사모임의 모임들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분위기였다. 소셜미디어에서 본 사람들을 만나고, 금새 친해져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런 분위기. 어쩌면 아직 그 누구도 본적이 없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국제버젼을 ICASSI를 통해 본 지도.

<그 밖의 이모저모>

자선 경매 :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단체운영을 위한 자선경매가 첫 주 수요일 저녁에 열린다. 다양한 국가에서 참가자들이 가지고 온 물건들에 가격을 붙여 제출하면, 저녁을 먹은 뒤에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것이다. 또 경매가 필요한 것들은 앞에 사람들이 원하는 가격을 적고, 가장 높은 금액을 적은사람에게 낙찰되는 방식. 또 고가의 것들은 전체 모임이 있었던 홀에서 라이브 경매로 판매된다. 재미있는 건 학생들이 여기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몇 명의 학생들은 어깨 안마를 해주는 것을 상품으로 내놓았다. 상품에 가격 대신 번호를 적어두고 1유로짜리 뽑기 번호를 팔기도 했다. 나도 기대를 가지고 번호표를 하나 샀는데, 이 녀석들 통이 보통 큰 게 아니다. 10개 남짓의 상품에 400번대까지의 번호표를 만들었다. 당연히 꽝. 내가 여기서 보드게임을 놀이치료에 사용하는 워크북을 샀다. 스프링제본이길래, 외국인들도 제본을 쓰나보다 싶어서 검색해보니 무려 비매품이다. 심지어 작가도 ‘놀이치료’의 저자 테리 코트만이었다. 혼자서 득템 득템을 외치며 흥분했고 밖으로 나와서, 라이브 경매에 가는 대신 책값 만큼 맥주를 마시러 갔다. 다음 날 아침 이렇게 모인 기부금액이 얼마였는지 소식지에 적혔는데, 눈이 휘둥그래졌다. 모금금액은 5690유로. 우리 돈 800만원 정도. 그중에서 라이브 옥션에서 판매된 금액이 3950유로였다니. 다음에 오면 라이브옥션을 꼭 가야겠구나. 아쉽게도 참여하지 못한 나는 무엇이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관광과 볼거리

첫날 나눠주는 안내문에는 관광을 위한 간단한 가이드가 적혀있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노선, 시내의 관광지가 지도와 함께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고, 근교인 쾰른으로 가는 방법도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세탁에 대한 안내도 포함.) 또 첫 주와 둘째 주 사이에 1박 2일 주말 여행이 신청자에 한해 실시된다. 시내까지 나가지 않아도 매일밤이면 맥주와 와인들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일행과 유스호스텔에 딸린 비스트로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11시쯤 되어 숙소로 돌아오면 항상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온 동네가 떠나가라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몇 십년만에 만난 고향친구들처럼 말이다. 첫 주에만 참여해서 보지 못한 것은 둘째 주에 열리는 탈렌트 나이트다. 일종의 재롱잔치.  몇 년전 참여한 한국팀은 당시 세계를 휩쓸던 노래 ‘강남 스타일’에 맞춰 말품을 췄다고 전해진다.

-단체사진과 굳즈

첫주 수요일에는 유서깊은 단체사진 촬영을 한다. 전체사진, 강사들과 운영진, 그리고 아이들 사진을 찍는데. 이 사진들이 유서깊은 건 ICASSI가 생긴 이래로 이런식으로 사진을 누적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메인 강의장에 ICASSI가 생겼을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단체사진이 붙여지고, 올해의 단체사진 샘플도 인화되어 게시되고, 구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신청할 수 있다. 또 그 사진들은 공식기록으로 남아 ICASSI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서도 받아볼 수 있다. 메인 홀에 단체사진이 나열된 걸 보았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끝자락에 나도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정말 놀랍고 자랑스러웠다.

서점도 운영되었다. 그동안 아마존을 통해 구입하거나 E-BOOK으로 보던 책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3유로에 ICASSI 에코백과 같은 굳즈들도 판매했다. 다음에 올 땐 이 에코백을 들고 스터디 선생님들과 함께 오고 싶다고 생각으로 과감하게 10개나 구입했다. 독일어로 발행되는 학술지를 한참 쳐다보고 있었더니, 내게 독일어로 말을 걸어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다만 뭐라고 말했는지를 몰라서 그렇지.

-참가비

참가비는 코스에 따라 다르다. 성인 전일 코스 참가를 기준으로 1주일 460유로, 2주일 740유로이고 ICASSI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참가안내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고, 거기에서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얼리버드, 그룹, 학생, 특별할인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ICASSI에서 제공하는 숙소들은 1주일에 300유로 정도부터~가족실 950유로까지이다. (개인 샤워실이 딸린 1인실의 1주일 요금은 600유로) 원한다면 다른 숙소를 개인적으로 예약해서 사용해도 된다. 나는 3/31이전 예약자에 할인해주는 것을 적용받고, 공용욕실을 사용하는 가장 저렴한 숙소를 사용해서 ICASSI참석을 위해 772.50유로(참가비 410유로, 숙박비 335유로, 점심 27.50유로)를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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