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초임교사들의 교직갈등에 관한 이야기

초임교사 하면 떠오르는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청년, 젊음, 열정, 패기와 같은 긍정적 언어들이 스쳐간다. 좋은 단어를 다 제쳐놓고 갈등(葛藤)을 초임교사에 붙여 면목이 없지만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여겨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글로 정리한 적이 있다. 석사학위논문을 학술지로 정리하여 발표하였으나 여러 해가 지나 다시 읽어보니 학문의 깊이가 얕아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보여 부끄럽다.

초임교사는 학교조직에 처음 들어와 동화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한편, 자신과 조직 사이의 평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가려는 조절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역동적인 교직적응 과정에서 초임교사는 내적 갈등을 수없이 느낄 것이며, 직간접적으로 외부와의 갈등도 경험할 것이다. 이미 교직사회에 적응이 된 사람 입장에서는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인정되는 맥락적 상황이나 행동도 초임교사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교직 내 기득권 집단의 이기주의적 관행이나 비합리적 관습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주위의 ‘착한’ 신규들의 모습은 교직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마지못해 따르는 표면적 일치 행동이거나 ‘이상한’ 신규라는 꼬리표를 달기 싫어서 판단과 발언을 유보하고 견디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교사는 전문직은 아닌 것 같아요. 의사들은 어려운 수술을 할 때 팀을 이뤄서 전문성 높은 의사가 앞장서서 수술을 하는데 교사는 부딪치며 배우라는 의미라며 가장 전문성 낮은 신규들에게 어려운 학년, 기피업무 턱턱 맡기잖아요. 서비스업에서나 그러는 거 아닌가요?”

최근 언제나 밝은 모습이 인상적인 초임교사와의 식사자리에서 위와 같은 말을 듣고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전체 업무량의 파이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초임교사에 대한 두드러진 업무 감축 배려는 어렵다고 말하기엔 선배로서 왠지 모르게 궁색하고, 전문성 발달을 위한 공식적 스캐폴딩이 ‘추수연수’, ‘임상장학’, ‘멘토-멘티제’ 등의 보조적이고 일회적 장치에 그치며 그마저도 형식화되어 운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비공식적으로 동료교사 간에 선후배라는 명목의 상호작용을 하지만 막상 초임교사에게 민원이 발생하면 개인의 문제가 되며, 이를 학교나 동료교사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대응해 교사를 보호하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초임교사들은 학교조직이나 동료교사들에 대한 신뢰를 쌓기 어려울 것이다. 착취라고 하면 심한 말 같지만 호봉제가 적용되는 학교에서 가장 저임금을 받는 교사들이 과중한 업무를 감당하는 관행이 있으면 그것은 불공정한 착취이다. 초임교사들이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민원 발생 소지가 있는 고난이도 학년과 업무를 주는 것은 일종의 괴롭힘이자 태움이다. 소통이 부재한 폐쇄적 교실문화는 어쩌면 초임시절 당했던 착취와 태움에 의해 마음이 스르르 닫히며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젊을 때도 그랬다’는 말로 합리화하지 말고 이제는 그들에게 전문성 발달을 위한 시공간적 여유를 부여해야 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경력교사들에게 마음을 열도록 여러 측면에서 지원해야 한다.

초임교사들의 갈등을 이해하는 것은 교사 전문성 발달 경로를 이해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학교조직과 교직사회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안정감이 있어야 초임교사들은 생존의 위기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발달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한편, 발달을 위해서는 전문성 발달의 경로를 알려줄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 초임교사들은 학생이 아닌 교사로서는 학교 현장에 대해 몰이해 상태에 가깝기 때문에 전문성 발달의 경로의존성에 있어 의미 있는 타자의 존재, 전문적 학습 네트워크 및 공동체의 존재는 더욱 중요하다.

만약 교사의 전문성이 발달한다면, 시간이 흐르며 교사들 간에 전문성의 다양성과 함께 수준의 격차가 발생하며, 그에 따라 일종의 계열과 위계가 생겨날 것이다. 교사들 간의 소통에도 방향성과 흐름의 풍요화가 발생할 것이다. 교사집단이 전문적 집단이라면 초임교사 시기는 자신의 전문성 발달의 방향을 정하고 수업성장을 위해 스승들을 교직 내부에서 찾아 나서서 몰입하여 무엇인가를 배워나가는 기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공식적 학교조직에는 승진점수, 승진가산점 관리 시스템은 있지만 교사전문성 발달 관리 시스템은 없다. 교사의 전문성 수준 또는 단계에 대한 공식적 인증도 없고 수십 년 만에 현장에 들어온 수석교사제는 겨우 숨만 쉬고 있는 형편이다. 업무난이도, 학년, 담임 여부에 따른 기계적인 성과상여금제, 형식화된 근무평정 및 교원능력개발평가가 있긴 하지만 교직사회 전반에서 인정받는 제대로 된 것은 없다. 교직 내 전문성 발달 경로의 부재는 초임교사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든다. 초임교사들은 자신이 수업을 하는 사람인지, 일선 교육기관의 행정사무원인지 헷갈리는 것이 당연하다. 좀 욕심 있다 하는 친구들은 일단 무조건 승진가산점을 모아야 하는지, 장학사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지, 대학원을 다니거나 유학을 가서 연구원이나 대학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궁금해 하며, 안 되면 평교사로 앞으로의 인생을 즐기겠다고 한다.

이 외에도 교실수업 실천을 잘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하는 초임교사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초임교사들이 교직 생애 평생에 걸친 수업전문성 발달 과정과 경로에 대하여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업은 시수만 채우면 모두 같은 수업, 교직 6개월차나 30년차나 한 차시 수업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치기어린 건방짐 때문일까? 나는 그것은 제도적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초임교사들은 진입장벽이 높은 교직에 막상 들어와 보니 교사는 학교에서 보조적 존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허탈하기도 할 것이다. 수업보다는 민원에 시달리고 잡무에 치이는 경력교사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가 그리 희망적인 것 같지 않아, 앞으로 어떻게 버틸지 교직에 들어오자마자 걱정을 시작한다. 수업과 업무에 품을 들이는 시간을 줄여 불공정한 느낌을 줄이려 노력하기도 한다(공정성 이론).

수업을 잘 하기 위한 투입이 줄어들면 당연히 수업의 질은 낮아진다. 초임교사 시기부터 수업에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 다수를 차지한다면 교직의 지속가능발전이나 장밋빛 미래보장은 어려워질 것이다. 질 낮은 수업은 장기적으로 우리 자신의 직업적 자존감을 낮게 만들고, 핵심 업무인 수업의 소외 및 외주화를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교사라는 안정적 직업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 이렇게 초임교사의 교직갈등은 교직 외부자 관점을 견지한 똑똑한 초임교사들이 교직 전반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적응 및 대응 전략을 구사하는 역동적인 과정의 부산물이며, 이와 같은 이유에서 초임교사 갈등은 전문적 교사 발달, 학교민주화, 미래교사 논의 등 따끈따끈한 현안들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초임교사 갈등을 사회·문화적 영향에서 비롯된 교사의 갈등, 학교 내부 구성원과의 갈등, 학교 외부와의 갈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한정된 지면에 다 실을 수는 없고, 여기서는 사회문화적 영향에 대하여 간단히 적어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라는 거시체계(macrosystem)의 글로벌화, 고도자본화 등 개방사회로의 변화는 초임교사 연령대를 높이고, 배경환경의 다양성을 확장했으며, 교직의 여유와 안정성 가치의 재평가로 인해 교직 진입장벽을 높이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교직사회는 보상의 증가 등 별 다른 노력 없이도 더욱 똑똑한 초임교사들을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다. 당사자인 초임교사들은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몇 년 전부터 확 줄어든 초등 임용 티오의 여파로 졸업 후 임용시험 재수, 대기기간 장기화로 3년 정도는 애교이고, 여러 가지 일신상 사유로 30대에 입직하는 초임교사도 많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에서도 교직 이전 경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히 쌓여 교직에 입문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짧지만 의미 있는 사회생활 경험으로 나름의 연륜이 쌓여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게 기존 관행대로 불합리한 업무나 학년을 제공하면 경력교사 못지않은 격렬한 의사표현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5~10년차인 선배들보다 나이 많은 신규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후배를 가르치는 방식’은 이제는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초임교사가 속한 사회경제적 지위 또는 근무지의 위치에 따라 그들이 살 자취방이 원룸인지 아파트인지 관사인지, 월세인지 전세인지가 결정된다. 내가 근무하는 서울의 강남서초 지역에 초임교사가 오면 일단 이들이 모태(?) 강남인인지 궁금해 하는 교사들이 많다. ‘어디 살아요?’라는 말에 내포된 의미를 지방 출신인 나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이제 일자리를 잡은 저임금 청년교사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상당히 중요하게 다룰 문제이다. 높아지는 주거비용에 따른 주거불안, 입직까지 걸리는 기간의 장기화로 인한 학자금 및 생활자금 대출의 압박, 초임교사 간 사회경제적 지위배경의 양극화에 따라 초임교사들이 겪는 내적갈등과 관계성의 흐름,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이 교직사회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관하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동일 직급 내에서 선후배 교사 간 기강 잡기 기제인 ‘소문’과 ‘꼬리표’, (업무 중심, 승진 중심 학교구조로 인해) 여전히 남교사를 우대하는 교직 문화 속에서 소외받는 80% 교사의 역설, 연공서열과 성과주의 사이에서 열심히 했다가 욕만 먹는 억울한 초임교사,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로 인한) 지역교대 중심의 차별적 네트워크와 소외 등 하고 싶은 내용이 많다. 혹시라도 내용이 궁금한 독자가 있다면 2014년에 출판된 ‘한국 초등학교 초임교사의 교직갈등에 관한 질적 연구’를 한번 읽어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노지영(서울원명초)
rohjio@se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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