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은 고래를 맥 빠지게 만든다.

나는 참 운이 좋은 교사였다. 교직에 첫발을 내딛고 단 한 차례의 민원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주변에서만 전해 듣던 민원이 나에게도 발생한 것이다.

사건은 쉬는 시간에 발생하였다. 동급생의 장난으로 인해 피해 학생 얼굴에 상처가 났고, 해당 학부모는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학교에서 발생한 학생 안전에 대한 책임은 분명 담임교사에 있지만, 모욕적인 말과 폭언은 견디기 힘들었다. 가해 학생에게도 똑같이 얼굴에 상처를 낼 것이라는 학부모의 말을 들을 때는 교사로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긴장되기도 하였다. 그 학생을 때린 다음, 우리도 사과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런 수준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었던 이 날은, 정말 온몸에 힘이 축 빠지는 그런 날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 제목을 이 상황에 비춰 바꿔본다면 ‘민원은 고래를 맥 빠지게 만든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고나서 이 사건을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며칠간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떨 때는 화가 치밀기도 하고, 어떨 때는 무기력만이 남아있기도 하였다. 아마 민원을 경험한 교사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동안 교사로서 최선을 다했던 헌신과 노력이 한 번의 민원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교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고, 교직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민원을 받은 직후 교사는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생각이 자리 잡게 되며, 내 역할의 최소한의 것만을 하려는 소극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심지어는 민원의 대상이 밉게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교사이기 전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감정노동에 시달려 맥이 빠진 교사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첫째, 전문적 상담을 받는 것을 권하고 싶다.

교사가 정신적으로 지칠 때 관련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것은 매우 건전한 일이다. 간혹 교사들은 정신과나 정신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것을 꺼려하기도 하는데, 한번 가보면 정신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미주알 고주알 풀어놓는 것으로 감정을 해소하고는 한다. 이는 물론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라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다. 내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불편하지는 않을까 미안하기도 하고, 혹여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는 온연히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공감해준다. 그리고 내 마음 밑바닥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내면서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관련한 유사한 사례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양질의 조언을 우리에게 해줄 수 있다. 민원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정신건강센터 전문가를 추천해주고 싶다.

둘째, 대응이 필요한 민원과 필요하지 않은 민원을 구별하는 눈이 필요하다.

민원은 그 종류만으로도 수천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민원들 중에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할 것과 단호하게 거절해야할 것이 섞여있다. 교사는 교육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판단 기준도 교육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A초등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왔다. 이는 교육과정 운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무시해야할 민원이다. 또한 B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동성애에 대해 편견 없는 시각을 가져야한다고 수업 시간에 언급을 했다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왔다. 이 경우는 교육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통념상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게 가르치는 것이 우리 교육에서 지향해야 할 방향성이기 때문에 해당 민원의 경우로 단호하게 거절해야한다. 하지만 앞선 경우처럼 학생이 다쳐서 민원이 들어온 경우는 교사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 학부모의 요구 내용이 타당한 경우 수용하고 반영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은 결국 교육이다.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이처럼 교사는 교육의 관점에서 민원을 처리하면 보다 명료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다.

셋째, 민원은 더 나은 교사가 되어가기 위한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민원 때문에 당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교사에게 이러한 말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수그러들고, 당시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된다. 그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며 그 때 어떤 입장과 행동을 취하면 더 나았을 지에 대해 차분히 생각할 수 있다. 민원을 받아본 경험은 교사는 훗날 민원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을 할지에 대한 판단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민원은 언제 어디서 터질 수 있는 예측불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비를 하는 것이 좋다. 내 교권을 지켜 나아가야겠다는 필요성은 교권을 침해받았을 때 그 생각이 간절해진다. 민원을 통해 교권을 보호받는 절차 등을 공부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내 교권을 신장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장, 교감선생님의 태도 때문에 더욱 상처받는 교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문제를 들어주기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기준으로 문제를 다루는 모습을 볼 때 교사들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교사는 이러한 점에서 정신적으로 꽤나 힘든 직업이다. 혹쉴드(Hochschild)는 ‘나는 정말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학부모 민원을 상대하면서 수많은 가면을 쓰게 된다. 미안하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이야기해야하며, 웃고 싶지 않지만 웃으며 상대방을 응해야한다. 이러한 교사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안내된 절차가 필요하며, 이러한 담론의 확장은 궁극적으로 우리 교육을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능력만 되면 떠나고 싶어요. 진짜 능력만 되면. “나, 나가고 싶어. 근데 능력이 안 돼서 못 나가.” 그런 얘기해요. 진짜로. 근데 진짜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위 내용은 민원을 받은 13년차 교사의 말이다. 민원을 받은 많은 교사는 학교로부터 탈출을 꿈꾸지만 그것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적어도 교사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얼마 전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던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도 발생하였다. 다행이도 일선 교육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크게 인식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학부모 전화를 막기 위해 교사의 휴대폰 번호를 비공개로 할 것과 더 나아가 업무용 전화를 지급할 것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교사에게 직접 제기하지 않도록 하는 민원처리시스템 도입 등 교권침해 예방 대책이 발표되었다. 더불어 교권을 침해받은 선생님들이 법률적인 자문을 지원받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이 조성되어야하고, 악성 민원들을 학교 차원에서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도 필요하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교가 행복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요즘 참 지키기 어려운 말이다. 교사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황지남 (용이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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