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후배 박 교장에게

<김현철 경기도포천교육지원청>

새 학기에 교장으로 임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들었네. 진심으로 축하하네. 자네에게 미리 교장이라는 호칭을 써도 괜찮겠지? 이미 그런 마음으로 다음 학기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 인자하고 너그러운 성품이니 중요한 역할을 잘 해낼 것이라고 믿네. 교감 발령 전에 찾아와 그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조언을 청하던 자네를 기억한다네. 그 겸손함이면 교장의 소임도 잘 해낼 것으로 확신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를 아끼는 선배의 지나친 애정으로 몇 가지 전하네. 교육자로서 인성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맹신하여 리더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던 많은 선배들의 뒤를 따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첫째, 과거의 성공 경험은 모두 깨끗이 잊게.

모든 리더십 학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사실이 있다네. 리더의 성공에 가장 큰 장애물은 ‘과거 자신의 성공 경험’이라고.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Toynbee)는 인류 역사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해냈다네. 성공한 지도자나 민족이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을 과신한 나머지 자신의 능력 또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방법을 절대 진리로 착각해 결국 실패하는 역사가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말일세. 이것을 역사해석학 용어로 ‘휴브리스(Hubris)’라고 한다네. 난 과거 인류의 역사뿐만 아니라 오늘의 학교 현장에서도 휴브리스를 늘 목격하고 있네.

자네의 성공 경험은 이미 과거의 것이네. 구성원의 인식, 그리고 학교의 환경과 조건이 이미 과거의 그것이 아니라네. 변수가 변하면 솔류션도 변하는 것이 이치 아니겠나? 자네의 성공을 좌우했던 변수는 이미 오래전에 변했으니 그 경험도 하루 빨리 잊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와 같이 식견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말은 절대 하지 말게. 세월은 젊은 사람들의 방향으로 흐른다네. 1년이 지나면 1년만큼 더 젊은 사람의 방향으로 흐르고 결코 반대로 흐를 리 없지. 자네의 정답은 현실에서 매일 매일 과거로 흐르고 있음을 명심하게.

둘째, 이제 그 누구도 교장에게 처음부터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자네도 경험했듯이 과거 권위사회에서는 리더 자리에 권위가 마치 별책부록처럼 따라붙었지. 학교에서는 교직원이 교장에게,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그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네.

자격 연수에서 누누이 들었겠지만 그런 프리미엄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네. 이제는 구성원들이 리더를 평가하고, 그가 따를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되었을 때만 리더에게 권위를 부여한다네. 이것이 탈권위 사회에서 권위를 획득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법이라네. 자네가 앉을 자리의 방석 밑에 권위라는 취임 선물은 없음을 명심하게. 이제 자신의 실력, 인품, 도덕성 그리고 구성원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교장의 권위를 획득해야만 한다네. 이런 시대에 교장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권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꼭 기억해두게.

권위 의식을 버리고 낮아지고 또 낮아지게. 모든 구성원을 차별없이 존중하게. 존중을 넘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동료로서 존경하게. 자네에게 부여된 권한은 잊어버리고 자네의 의무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결국엔 자네 말에 권위가 실리고 자네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걸세. 그렇게 되면 ‘아이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성장’이라는 평생의 꿈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네.

셋째, 학교는 학교장의 교육철학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란 사실을 명심하게.

인간이 직업을 갖는 이유 중 가장 상위의 가치가 자아실현이라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네. 그렇다면 조직을 책임진 교장의 최우선 책무는 구성원 모두의 자아실현을 돕는 일이 아닐까? 서로 협력하고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가치 있는 욕구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구성원을 잘 활용하여 자신의 교육철학을 구현하겠다는 생각처럼 비교육적인고 반인간적인 발상이 또 어디 있겠나? 아직도 학교 홈페이지에 학교장의 경영철학이 게시된 학교를 보면 구성원들은 어떤 내면의 힘으로 교육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버텨내는지 궁금하다네. 그래서 바른 뜻과 뛰어난 역량을 갖춘 학교장의 교육철학이 실현되지 못하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햐 할지……. 자네가 지금까지 좋은 교육을 꿈꿔 왔다면 후배들도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어야 하네. 그런 의미에서 후배들이 교사로서의 열정과 책임감이 부족해서 교장이 개입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과거 자네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라네. 누구나 그렇듯이 자네도 열정을 품은 교사가 아니었던가?

넷째, 구성원 모두가 마음 놓고 개성을 발휘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게.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일할 때 최고의 퍼포먼스를 발휘한다네. 다른 사람이나 조직의 방식으로는 자신의 최고치를 발휘할 수 없겠지. ‘출근했으면 조직에 적응하라’는 말 대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라’고 말하고 리더의 자리를 버텨 보게.

아마도 자네는 교장으로서 늘 이렇게 말하게 될 걸세. ‘작년의 방식 말고 좀 더 창의적으로 일해보라’고. 구성원들이 창의적으로 일하기를 원한다면 자네부터 과거의 관료적 조직문화를 깨끗이 잊고 역동성 넘치는 조직문화를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 고민해야 하네. 인간에겐 모드(mode) 스위치가 없다네. 통제된 조직문화에서 ‘관료 모드’로 일하다가 교실에서는 단숨에 ‘창의성 모드’로 전환할 수는 없는 법이지. 입으로는 창의성, 독창성을 말하면서 구성원들을 위계질서 속에서 질식할 듯한 관료 모드에 가두지 말게.

말과 행동이 주는 메시지가 다른 리더들이 여전히 많다네. 모든 조직의 리더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창의성이라는 것은 그들이 경험한 바 없는 너무 낯선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른 개성들이 부딪히는 카오스(Kaos)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네. 리더가 이런 카오스 상태를 견딜 수 없다면, 그 속에서 구성원들의 무한실패를 감당할 수 없다면 창의성은 기대할 수 없다네.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이 잘 이해되고 결과가 명확하게 예측된다면, 실수하지 않고 모든 일을 원만히 해낸다면 이미 창의성은 물 건너간 셈이라네. 그렇게 된다면 그 책임은 그런 조직문화를 만든 리더에게 있다네. 많은 선배 교장들이 그 책임을 구성원에게 돌리면서 실패의 무한루프를 탈출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하게.

다섯째, 구성원을 최고로 대우하게.

뛰어난 글로벌 기업들은 모두 직원을 최고로 대우한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 학교는 어떨까? 교장이 보수를 올려줄 수도 없고 근무 시간을 줄여주거나 융통성을 부여하기도 힘들지. 그래도 리더가 유연하게 사고한다면 ‘최고로 대우한다’는 가치를 실현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네. 최고의 자유, 최고의 결정권과 실행권, 최고의 권한위임, 최고의 존중과 배려, 최고의 조직문화 등이 바로 그것이라네. 자네가 “내가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군. 리더십 전문가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네. “당신이 그들을 최고로 대우하면, 그들도 당신에게 최고로 되돌려줄 것이다”라고.

우리 선생들에겐 두 가지 불치병과도 같은 증상이 있다네. ‘좋은 선생이 되는 것’과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하는 것’이지. 보통 교장이 되면 이 증상이 최고치에 이른다네. 그러나 명심해야 하네. 베버((Max Weber)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에게 자신의 선한 의지인 ‘신념윤리’와 함께 자신의 행동에 따라 예상되는 결과에 따른 ‘책임윤리’를 갖추라고 강조했다네. 자네에게도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선물하겠다’는 신념을 ‘어떻게’ 실천해낼지 묻고 싶네. 자네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걸세.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했으나 구성원들이 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책임윤리의 결핍을 뜻하는 것이라네.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실무자와 달리 리더는 자신의 성공과 실패가 자신의 손을 떠나 구성원에게 넘어간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자네가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구성원들을 최고로 대우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네. 그들이 자신의 리더에게, 자신의 동료에게, 자신의 조직에 자부심을 갖도록 말이지.

여섯째, 구성원의 기획안을 자네의 생각으로 오염시키지 말게.

구성원을 타성에 젖게 하고 싶다면 그들의 기획을 자네 생각으로 오염시키게. 가능하면 보다 많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곁들이면서. 그러면 아주 손쉽게 타성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다네. ‘빗자루 들자 마당 쓸라고 한다’는 속담이 있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라네. 내가 선택한 일과 타인이 시킨 일의 의미는 천양지차라네. 정신분석학은 인간이 ‘존재’ 대신 ‘의미’를 택하는 강요된 선택(forced choice)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네. 누군가에게 자네의 의미를 투영한다면 이미 그는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가 된 것이라네. 노예에게 어찌 자발성, 열정과 헌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타인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지 않는다네. 부디 자신의 생각을 구현하려 하지 말게. 구성원의 기획안에 자네 생각을 얹지 말게. 기획안의 완벽성을 높이는 피드백을 고민하지 말게. 대신 자네와 그들 사이에, 그리고 구성원들 사이에 어떻게 감정적 교류(케미)를 활성화할지 고민하게. ‘이런 교장선생님과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어’, ‘이런 교장선생님과 함께 일해보지 않으면 언제 하겠어’ 혹은 ‘이 일을 동료들과 같이 해보면 너무 신날 것 같은데’라고 생각을 하도록 피드백하게.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레스토랑 24개를 성공적으로 런칭했던 쉐이크쉑의 창업자 댄 마이어(Dan Myer)는 조직의 성공에 필요한 통찰이 담긴 말을 들려줬다네. “업무의 우선순위는 서로를 보살피는 겁니다. 우리는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일의 전부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네. ‘자네가 직원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자네가 어떤 리더인지를 말해준다네. ‘구성원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가’는 자네가 얼마나 능력있는 리더인지를 말해준다네. 어쩌면 그게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네. 만일 자네가 그들을 보살피는 일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보살피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지 않겠나? 그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의 목표가 바로 그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선배에게 들었던 방식의 조언을 구성원들에겐 절대 하지 말게.

눈을 감고 지금까지 들었던 선배들의 전형적인 조언을 100개만 떠올려보게. 그중 자네가 가슴에 새기고 행동지침으로 삼은 말이 얼마나 되는지. 모두가 그 선배들이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들려준 좋은 말들이었겠지만 자네 머릿속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걸세. 자네의 조언이 그들에게 영향을 줄 가능성도 딱 그만큼이라네.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조언도 많았음을 기억하게.

조언 대신 그들이 학생들에게 했으면 하는 언행을 자네가 먼저 보여주게. 교사들이 학생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성장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주기를 바란다면 자네가 그들을 그렇게 대하게.

그래도 굳이 조언해야겠다면 이런 말만 해주게.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랍니다. 모르셨지요? 왜냐하면…….”

<김현철/경기도포천교육지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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