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교사 승진제도를 생각하다

박순걸 송진초등학교 교감

교장이라는 자리

학교는 오랜 기간 비민주성, 행정업무, 승진제도 등으로 교사를 옭아메어 왔다. 정치권력이 몇 번씩 바뀌는 역사 속에서도 학교 권력은 교장실을 중심으로 집권화되었다. 교장의 자리가 권력이 되는 것은 다음 교장을 만들어주는 근무평정이라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승진을 원하는 사람이 교장에게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죽어라 행정업무를 맡아서 처리해야만 승진할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은 오랜 기간 철옹성을 구축하며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교사의 처지를 가장 잘 아는 교감도 교사의 힘듦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교장의 말에 더 귀를 열 수밖에 없다. 교사 또한 승진을 하고자 마음을 결정하면 관리자의 눈에 들어야 한다. 오랜 기간 점수를 모아 승진을 위해 준비해왔는데 마지막 3년간 근무평가 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그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교무부장은 교사의 편에 서서 관리자와 반목할 수 없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교장의 시선이 학생 생활지도나 수업보다 행정업무에 주안점이 있다면 이를 잘 처리하는 교사가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교장은 이 권한을 잘 이용해 교사와 학교를 통제해왔다. 오늘날 승진제도 개정에 목소리가 큰 것은 이런 권력구조에서 민주성과 교사다움을 잃어간다는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승진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현행 승진제도에서 관리자가 된 분들 모두가 학생 교육은 등한시한 채 점수 확보에만 충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열심히 수업을 하고 학생 생활지도에만 최선을 다한 교사는 결코 쉽게 승진할 수 없는 제도임은 학교에 근무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교장은 행정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교육 전문가이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교사 내에서 관리자가 되도록 한 것이 아닌가. 행정을 더 충실히 한 사람이 교장이 되어야 한다면 교육을 더 충실히 한 사람도 교장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해야 한다. 묵묵히 교실 현장을 지키며 헌신했던 많은 교사들에게도 부족한 행정 경험이나마 자신의 교육 소신을 교장으로서 펼쳐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승진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고 모두가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교장자격증 없이도 교사라면 누구나 교장에 응모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이 공모를 통한 선출제다. 선출제가 실현 가능한지는 다양한 반론이 제기되지만 상식적으로 접근하면 답이 나온다. 대학에서는 구성원들의 투표로 총장을 뽑는다. 총장 후보로 등록하려고 대학교수를 하는 동안 소수점 같은 점수를 모으고 관리하지는 않는다. 훌륭한 교수면 누구나 총장이 될 수 있듯이 훌륭한 교사이면 누구나 교장이 되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

조직원이 생각하기에 우리 조직을 가장 잘 이끌 사람을 민주주의의 기초인 선거로 뽑는 것이다. 교장선출제는 내부형 공모제라는 제도의 흐름을 타고 중요한 역사적 소명이 되고 있다. 성공 여부는 현재 우리 자세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교장선출제를 실현하기 위해 교육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내부형 공모제 적극 활용

첫째, 평교사의 내부형 공모제를 적극 활용하자.

내부형 공모제를 두고 또 다른 형태의 승진제도라며 단계를 거치지 않은 무자격증 교장을 양성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교장 공모과정에서 교사, 학부모, 지역 인사, 교육청 간 알력, 교원단체들의 대립 등을 초래해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현행 승진제도가 정치적 요소가 더 높음을 이들은 간과하고 있다.

만약 한 학교에 벽지로 가기 위한 이동점수가 필요한 교사가 여러 명이거나 승진을 위해 좋은 근평을 받기 위한 교사도 여러 명이라고 가정해보자. 점수 부여에 절대적 권한을 가지는 교장을 향한 정치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내부형 공모제는 교장자격증을 무력화시키는 첫 계기가 될 것이고 열심히 수업하고 교육에 전념해온 많은 교사들에게도 교장 승진의 길을 열어주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내부형 공모제는 교장선출제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 갈 수밖에 없는 제도다. 훌륭한 교육자로서 경력을 쌓은 교사들이 교장이 되었을 때 보여줄 학교는 점수를 관리하며 자격증을 갖춘 교장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일 것이다.

철저한 준비로 교장에 도전

둘째, 철저히 공부하고 준비하여 교장선출제를 대비하자.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교장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격증이 교장의 자질을 증명한다고 믿는다. 이들이 주장하는 교장 자격은 교감의 역할에 일정한 행정 경력을 더한 것이므로 교감을 거치지 않고는 행정 경험과 능력이 부족해 교장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런 행정적 자질은 교장을 꿈꾸는 교사라면 충분히 준비하고 능력을 갖추도록 연수 과정을 개설하여 신장시켜주면 된다. 계속 언급하지만 교사의 본분은 수업과 생활지도 능력이다. 행정 능력은 차후 문제다. 단지 행정적 자질이 부족해서 교사의 본분인 수업과 생활지도를 충실히 한 교사들이 교장이 되는 길을 접거나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교장이 행정 능력과 리더십이라는 자질을 갖추어야 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기에 교장에 도전하는 교사는 처절할 정도로 준비하고 공부해야 한다. 이제 막 교장선출제의 걸음마를 떼는 단계에서 행정 자질과 리더십 부족으로 반대하는 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거나 실패를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현재 관리자 모두를 향한 불신은 경계

셋째, 현재 관리자의 승진 과정에 일률적 의심을 거두자.

현재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한 자들을 불신하는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현행 승진제도에서 점수를 관리하지 않으면 승진하기 어렵지만 승진한 모든 이들을 점수만 관리하고 치중한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그들 중에는 나름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서 열심히 교직생활을 하는 이들도 많다. ‘마일리지만’ 모은 사람도 있겠지만 ‘마일리지도’ 모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승진을 한 사람들이다. 교사들이 승진한 사람들 모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면 지금의 관리자와 교사는 반목만 커질 뿐이다. 서로가 벽을 쌓고 끊임없이 충돌하게 된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절대로 관리자가 좋은 학교문화를 만들어갈 수 없다.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현행 승진제도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고, 교사보다는 관료의 입장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따라서 이제 승진한 자들을 달리 평가해야 한다. 현재 승진제도가 잘못되었지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승진한 자들을 모두 나쁜 교육자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마치 범법자 취급을 받은 그들의 단결은 현재 승진제도만 더 공고히 만들고 악화시킬 뿐이다.

교육 행정가로서 현재 모습 조명

넷째, 관리자의 현재 지원을 보고 평가하자.

교사가 교장과 교감을 평가하는 기준과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승진하기까지의 교사의 삶을 보고 현재 모습까지 평가하지 말고 승진 후 관리자로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을 보고 그들을 평가해야 한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지, 교사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지원하는지, ‘지금’ ‘현재’ 교육 행정가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학교의 행정업무를 도맡아 지원가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는 관리자로 올바르게 자리매김 할 수 있다. 관리자에 대한 평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가 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관리자상, 역할 재정립

다섯째, 새롭고 확고한 관리자의 역할을 정립하자.

실천교육교사모임은 교육 실천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터전이 되는 전문 네트워크다.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원은 교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학사, 교감, 교장도 포함되어 있다. 직책과 상관없이 참교육의 실현을 생각하고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모두가 함께한다. 따라서 실천교육교사모임이 관리자상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으면 한다. 잘못하는 관리자의 흠을 들추어내서 비판하고 단두대에 올리기보다 실천하는 관리자나 숨어 있는 본보기 교육자를 계속 발굴하고 소개해야 한다. 그들의 실천과 올바른 역할을 자꾸 알리는 것이 교육과 제도를 바꾸는 지름길이자 더 가치 있는 교원단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관리자상을 알리는 것은 다른 단체나 언론에 맡겨두고 실천교육교사모임이 바라는 21세기 관리자상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요구함으로써 교장과 교감의 역할을 재정립했으면 한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내부형 공모제나 교장선출제도 또 다른 승진제도일 뿐이다. 현행 승진제도가 비민주적인 독재자를 양성해낼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나 교장을 비판만 하고 올바른 교장상을 정립하지 못하면 또 다른 독재자만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승진제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현재 학교의 시스템과 법률만으로도 교장은 자신의 권한을 적절히 이용하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학교를 교장의 왕국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클릭만 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교사의 업무를 지원하고 맡아주는 관리자에게 신뢰를 보내고 그 결과를 기준으로 관리자를 평가해야 한다. 관리자로서의 중대한 역할, 지원자로서의 고충은 교사들로 하여금 승진에 대한 매력을 계속 감쇠시킬 것이다. 어쩌면 승진한 자의 업무과중과 고됨이 교장선출제로 가는 더 빠른 길이 될지도 모른다. 업무를 맡아서 처리해 달라고 주장하는 교사들보다 먼저 나서서 업무를 도맡아 하거나 수업을 시작하는 관리자들이 오히려 교장선출제를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주장으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그들은 실천교육교사모임과 같은 교사 조직과 연대하려 할 것이다.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변혁기에 양반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대상은 양반제도를 타파하자고 외치는 평민이 아니라 양반 내부에서 양반제도를 타파하자고 외치는 자들이었다.

교사 승진제도라는 대변화 앞에 선 학교

학교에서는 나이 많고 경력 많은 교사가 마땅히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그렇지가 못했다. 학생 교육에서만 보면 최고의 교육 전문가인데도 불구하고 단지 승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육 전문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명퇴 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몇 십 년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경력교사들이 명퇴를 염두에 두고 교단에 서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승진하지 않은 경력교사들의 교육 노하우와 숙련된 수업기술, 학생 생활지도 능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교장자격증과 견주어 그 중함이 결코 덜하지 않다. 승진이 편함을 누리고 능력을 과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봉사하는 길이 되도록 변화할 때가 왔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교사 승진제도라는 대변화의 물줄기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소수의 주장과 요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계에 종사하는 모두가 수긍하고 공감하는 합의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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