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답과 잘못된 질문

박종훈 (서일중학교 교사, 변호사)

 

 “자, 오늘은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에 관해서 토론해볼까요?”

  올해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운영하는 ‘헌법과 인권 토론’ 동아리 시간이었다. 말 많은 학교폭력에 대해서 아이들과 직접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바야흐로 학교폭력 전성시대다. 분명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학교폭력 온라인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학교폭력이 줄어들고 있어야 할 텐데,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체감은 그렇지 않다. 연일 반복되는 학교폭력 및 그에 따른 행정적 처리로 학교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것이다. 「학교폭력대책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줄여서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된 이후 학교폭력 처리 절차는 명료해졌는데 왜 학생, 학부모, 학교는 모두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을까? 가장 큰 요인의 하나로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친구 간 장난 한 번이 언제라도 학교폭력이란 이름으로 둔갑하여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 그 공포는 학교의 풍경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학교와 거리가 멀 것 같았던 변호사들이 학교에 드나들고, 내용증명이 학교에 발송되기 시작했다. 담당자들은 내가 교사인지 형사인지 정체성이 헷갈리기 시작했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때론 법정에 직접 서기도 해야 했다. 학교폭력예방법이 남긴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현장의 선생님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인데,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은 법령에 의한 의무사항이 아니다. 바로 교육부 훈령인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이하 ‘학교폭력 작성지침’)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가 ‘교육’에 관심 없는 입법자들이 학교폭력예방법을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법이 학교에서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도록 숨길을 불어넣은 범인은 놀랍게도 그 누구도 아닌 대한민국 교육을 주관하고 있는 교육부임을 말한다. 도대체 교육부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학교폭력 작성지침에 대하여 기획소송으로 진행했던 2016. 4. 28. 헌법재판소 선고 2012헌마630 결정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건의 개요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 사건의 청구인은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2. 4. 경 학교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되어, 같은 해 5. 22. 학교장으로부터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와 동항 제3호에 따른 ‘학교에서의 봉사’ 3일의 조치를 통보받았다. 그 결과 청구인이 학교폭력 관련 조치를 받았다는 내용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 및 보존되게 되자, 위 조항들이 법률유보원칙 및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청구인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2012. 7. 13. 학교폭력 작성지침에 대하여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 대하여 ‘합헌’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즉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해야만 하는 것이 헌법상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의 엄중한 판단 앞에, 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만 할까? 최소한 “헌법재판소도 문제없다고 했는데, 뭘”이 답은 아닐 것이다. 일단 거창한 것보다 교사가 잘 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질문하는 직업병을 두었다가 어디 쓸 것인가. 정답을 말한 헌법재판소가 정말 제대로 알고 답을 한 것인지 몇 가지만 꼭 물어봐야겠다.

  헌법재판소는 학교폭력 작성지침에 대해서 이렇게 판단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관련 조치사항을 기재⋅보존하게 하면 담당교사가 학생 개인의 과거 행동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 학생의 선도 및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급학교의 학생 선발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학생들의 경각심을 고취하여 학교폭력을 예방하거나 재발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멋지게 정답을 쓰신 헌법재판관님께 몇 가지만 꼭 여쭤보고 싶다.

  첫째, 교사는 부모를 제외하고는 학생들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존재입니다. 정말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의 과거 기록을 보고 학생을 파악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교사는 학생을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한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눈 맞춤과 호흡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학교는 매일 그러한 작용이 일어나는 곳이지요.

  둘째, 헌법재판관님의 말씀이 백번 옳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기록을 보고 학생을 선도 및 교육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설마 예단과 편견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는 것, 그게 헌법재판소가 생각하는 교사의 상은 아니지요?

  셋째, 상급학교의 학생 선발자료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작은 실수 한번이라도 상급학교 진학에 불이익을 받게 하는 것, 그게 바로 교육적인 것인가요? 엄벌주의는 교육이 아니라 형법의 단어 아니었나요?

  닿을 수 없는 질문을 목 놓아 던지고 나니, 공허함이 몰려온다. 최근 하나의 유령이 학교를 떠돌고 있다. 엄벌주의라는 유령이… 엄벌주의는 자극적이고 즉자적이다. 문제 대상을 찾기 쉽고 즉시 효과가 있는 듯 느껴진다. 아픈 우리 사회를 치료해 줄 구원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제의 원인 해소와 더 나은 대안 창출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 채 반복되기만 하는 강한 처벌은 공동체의 믿음과 동력을 소진시켜버린다. 이것이 (원하지 않지만) 요즘 학교폭력을 대하는 우리 학교의 자화상이다. 교육이란 탈을 쓰고 등장했던 엄벌주의는 어느덧 우리 교육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일은 교육의 자리를 대체한 엄벌주의가 어느덧 우리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싹트고 있다는 사실이다. 맨 처음 학생들에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자. 과연 명색이 ‘헌법과 인권 토론’ 동아리인 우리 아이들은 이 주제에 관해서 뭐라고 답했을까? 창체 시간이 끝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학생들의 입장이 정리된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생생활기록부 기재 찬성’을 압도적으로 지지하였다. 예상하지 못했냐고? 아니, 솔직히 고백컨대 나는 글을 읽기 전 이미 그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학교폭력에 갇혀 있는 학교의 풍경이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이 모든 것을 미리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학교폭력담당자인 나의 가슴을 한없이 답답하게 했다. 눈을 감았다. 내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었던 세상이 바로 이런 것이었나.

  어쩌면 처음부터 나의 질문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벌해야 하냐고 묻기 전에,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아프게 하고 있는지 물어야 했고, 어떻게 벌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해야만 하는지 물어야 했다. 엄벌주의의 승리는 우리 모두의 패배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교육을 돌려 받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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