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승모 강원도교육연구원 학습연구년 파견교사

학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이미 많은 문제들이 눈앞에 보인다.

‘학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해 부족, 밖에서만 말하는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한계, 교사들도 교장, 교감도, 아이들도 답하지 못하는 학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야기’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주인은 학교다. 학생이고 교사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말하는 주체들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하는 문화예술단체들이나 문화체육관광부 사업 담당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이들은 더 많은 사업의 결과와 실적을 만들어 세상에 알리고 있다.

이미 많은 학교에서 교사들은 음악시간, 미술시간,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에 문화예술교육을 잘 해오고 있다. 방과 후 오카리나, 우쿨렐레만이 학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것이 아니다. 또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부 등 대회와 공연을 다니는 특별한 친구들만이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대표한다는 것도 아니다. 음악시간에 합주를 하며 어울림을 경험하고, 합창을 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조절하여 친구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다. 미술시간에 자신의 손을 그리며 관찰의 힘을 길렀고, 수수깡을 자르고 색종이를 오려가며 손가락과 눈동자가 협응하는 능력을 키웠다. 그렇게 예술 교과 시간에 몸과 마음을 성장시켜온 것이다.

사업 중심, 부서 중심, 결과 중심, 오케스트라 중심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문제점을 함께 살펴보자. 학교라는 공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음악, 미술의 교과교육, 창의 체험, 자유학기제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깊게 고민해보자. 적당한 방과 후와 부서 운영의 수준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도 이야기해 보고 싶다.

이렇게, 깊고 자세히 살펴볼 때 우리는 국악강사와의 협력수업도 더 잘 될 것이고, 남는 악기들이 방치되는 일도 줄어들 것이며,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두 번 다시 안한다며 학교를 옮기고 자신의 과거 이력을 비밀로 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 학교에 진정 자리를 잘 잡기를 바란다. 물이 고이고 고여 썩고 있을지도 모른다. 학교문화예술교육 ‘사업’이 학교문화예술교육을 잠식하거나 공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교육의 목적에 맞게 지속가능하고 모두를 위한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될 수 있게 하자.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모든 아이들이 어제보다 한걸음 더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자.

이러한 글의 시작으로 먼저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이고 어떤 목적으로 운영 되어야 하며, 누구를 주인으로 보아야 할지 이야기 해보자. 짧은 글이지만 이 글을 시작으로 학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깊은 성찰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길 바란다.

1. 문화예술교육? 예술교육?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인지는 15년여밖에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예술교육이라는 말이 쓰였다. 학교에서도, 교육과정 상으로도 예술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복지가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을 하고 많은 나라에서 예술을 복지적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하였다. 예술 활동은 사회의 범죄율을 낮추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였으며,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산업화로도 연결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은 예술 활동을 통해 개인 및 사회의 변화와 이에 따른 관심에 의해 발견되고 만들어진 단어이다. 즉, 문화예술교육을 시행 할 때에는 예술 활동의 기능을 익히거나 실력을 연마하고 뽐내는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 그 활동들이 개인의 마음과 신체에 생기는 변화를 바라보고 느끼며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이후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다시 예술 활동으로 발현되고 그 과정에서 사회의 성숙이 이뤄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예술 활동에서 예술 자체가 활동 목표여도 되었던 시대에서 과감하게 수단이 되어도 되는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학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은 2004년 문화예술교육 진흥법이 생겨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문화예술교육 일을 담당할 기관을 만들면서 생겨났다. 2005년 만들어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은 점차 사업의 틀을 잡아가면서 학교와 사회로 구분하여 여러 교육 대상에게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 구분에 따라 각 사업은 ‘학교 문화예술교육 사업’, ‘사회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학교에서는 예술교육이라는 말이 사용하면서, 진흥원의 예술 강사 사업 등 관련 사업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을 혼용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전국의 진보 교육감은 문화예술교육을 강조하면서도 공감, 보편성, 민주성 등을 중요한 방향과 가치로 설정하였다. 이는 기존의 학교 예술교육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경쟁을 하고 순위를 정하는 대회 형식에서 모두가 참여하고 박수를 받는 페스티벌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심지어 어떤 경연대회들은 축소하거나 폐지되기도 하였으며, 학생들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스스로 계획하고 만드는 참여형 행사들이 늘어나기도 하였다. 마치 일부 엘리트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가치관에서 무상 급식, 무상 교육처럼 모두에게 기회의 균등을 주어야 한다는 가치관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제는 교육부에서도 용어를 통합하여 학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며, 교육과정 내, 교육과정 외로 이를 구분한다. 교육과정 내는 다시 음악, 미술 등 교과와 교과로 독립하지는 않았지만 체육 교과속 무용, 국어 교과속 연극을 교육과정 내 활용 교육으로 나눈다. 또한 창의적체험활동의 특색 활동(자율활동)과 동아리활동도 교육과정 내 문화예술교육이라 한다.

반면 교육과정 외에는 방과 후 활동, 학생 자율 동아리, 토요 동아리, 특별부서 운영 등이 포함된다. 난타부, 우쿨렐레부, 미술부, 사진부, 연극부, 뮤지컬부와 같은 주제로 운영될 수 있다. 방과 후 강사에 의해 수업형식으로만 이뤄진다면 방과후 교실이라고 하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연습, 운영 행사에 참여한다면 학생 자율 동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토요일에 집중적으로 운영하면 토요 동아리 내지는 토요 방과후 교실이 되는 것이고, 학교에서 집중적으로 예산과 지도 강사를 지원 운영하면 특별 부서라고 한다.

이처럼, 학교 문화예술교육은 교과에서부터 특별부서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다시 말해 교육과정에 기반 한 모든 학생들이 일주일에 4시간 이상 관련되어 있는 큰 규모의 교과 교육과 함께 교육과정 외의 일부 아이들이 선택에 의해 체험하고 성장하는 학생 자율 동아리, 방과 후 교실, 부서 운영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최근에는 학교 문화예술교육이라 하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의미로 쓰이고, 학교 예술교육은 이보다 조금 작은 의미로 기능을 습득하거나 결과물을 위해 집중하는 교육의 형태를 말하게 되었다

 

2. 학교는 문화예술교육을 할 형편이 되는가?

현대 사회는 수십 년간 경쟁으로 가득 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성적을 위해 경쟁하고, 화합을 위한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위해 경쟁하고, 직장에서는 승진을 위해 경쟁한다.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나 모든 것이 경쟁으로 치닫는 것은 나쁘다. 문화예술은 경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만든 노래와 내가 그린 그림은 경쟁과는 무관하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잘 담아 작품으로 만들고 사람들에게 전하면 그만이다. 누구는 온전히 받아드릴 것이고 누구는 스쳐간 뒤 10년 후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되는 것이 예술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예술은 어느 순간 경쟁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오디션 없이는 전문가가 될 수 없고, 대학교의 문턱은 여느 전공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이미 예술은 예술의 가치를 잃어가기 좋은 환경에 노출된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와 관련된 교육의 주체들은 예술, 문화예술을 교육할 준비가 되었다 할 수 있는가?

학부모들의 인식은 어떠한가?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만 해도 문화예술이 중요하다며 교양을 위하여 피아노와 미술을 가르친다. 조금 더 열정적이고 문화예술을 사랑한다고 믿는 학부모들은 바이올린, 발레까지 보낸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만 되어도 이제는 성적에 관심을 가지며, 국수사과영의 과목 외에는 학원도 그만 다니라 한다. 문화예술이 성적에 직접적이지 않다라는 생각에 문화예술로 몸과 마음이 자라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린다. 어린 시절 몇 년 잘 배운 것만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잘 가르쳤다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부모가 준비가 되었다 할 수 있을까?

학교에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나 업무가 시작이 되면 선생님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대회참가이다. 교사들이 알지도 못하는 수백 가지의 문화예술교육 관련 대회들이 존재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대회도 있지만 많은 대회들은 단체 운영의 실적을 위하여 행사를 만들고 운영하기도 한다. 마침 학교 관리자가 이런 행사 참여에 뜻이 있다면 교사와 아이들은 수 많은 대회에 참가하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때 혹시라도 언론사에 잘 알리지 않아 작은 언론 보도라도 없을 경우 담당 교사는 일을 잘 못했다 평가 받기도 한다. 따뜻하고 실험적인 마음으로 학교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는 것도 교사들에게는 참 많은 품이 들어가는 일인데, 이런 대회와 관련한 어려운 경험들이 교사의 문화예술에 대한 에너지와 관심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학교 관리자와 문화는 준비되었다 할 수 있는가?

어떤 교사들은 문화예술교육을 업무로만 보고 있다. 다른 중요한 업무가 있다면 학교문화예술교육 업무는 좀 미뤄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학교 문화예술교육은 교사가 매우 중요하다. 교사의 열정과 전문성에 의해 수업의 질이 매우 달라진다. 그런데 이러한 중요한 일을 업무로만 본다면 아이들과 함께 겪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문화예술교육은 업무가 아닌 삶을 나누는 자리이다. 교사 강사가 가르쳐서 배우는 것보다, 함께 하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 현장의 교사들은 준비가 되었는가?

 

3.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주인은 누구?

전 세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IT, 서비스 산업의 급속한 발달로 세계가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언어의 장벽도 낮아지고 있어서 다른 나라의 문화와 정보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SNS와 미디어는 기업과 정부의 것에서 개인의 것으로 넘어가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글과 영상으로 세상에 전달할 수 있다. 점점 더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가치와 애정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어 간다.

급속도로 산업화와 정보화된 사회 속에서 기술은 예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단순한 좋은 기술과 비싼 물건이 아니다. 대부분의 상품에는 가치가 포함되고, 산업과 정보가 발달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를 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세월호 사건과 촛불 탄핵 이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국민들과 학생들까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매우 커졌다. 국민들은 비판의식을 갖고 내 지역의 정치인들의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능력을 최우선으로 보던 관점에서 도덕성과 민주성, 합리성도 보게 되었다. 이렇게 세상은 점점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며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을 원하고 있다.

국가에서는 학교 교육을 통해 의미 있는 배움을 학생들이 가질 수 있길 원한다. 또 이런 과정으로 미래 사회를 책임질 인재를 육성하는데 많은 인력을 투자하고 사업을 추진한다. 이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기관이 학교이며 초등학교는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첫 공교육기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교육과정의 시스템은 국가 교육과정의 철학, 시도 교육청의 편성지침을 참고하여, 각 학교와 학급에서 세부교육과정을 수립하여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즉, 학교 교육은 시대성이 반영된 공교육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매일 수십, 수백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 친구들과 부딪히며 배우고 성장한다. 당연히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며, 학생들의 성장을 돕고 가르치는 것은 교사이다. 관리자는 이러한 학교의 성공적인 교육을 위하여 교사를 돕고 어려운 일을 해결한다. 행정실과 교무실은 예산, 행정 등의 일을 문제없이 해결하여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하고, 교장과 교감은 교사, 학부모, 지역 주민들의 일을 살피며 학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지원을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교장의 경험과 철학, 인품은 학생들의 배움에 잔잔한 영향을 미치며, 교감의 민주성, 사회성, 의사소통 능력은 교사와 학생들의 고른 성장을 돕고, 학교 구성원들 간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예술은 개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민주적으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데 참 좋은 도구다. 자아를 발견하고 배려와 공감을 경험하기에 매우 좋은 수단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조금씩 더 깨닫고 극복해 나갈 수도 있다. 학교 문화예술교육도 이러한 방향과 닿아있다. 방향과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 방과 후, 토요 프로그램, 학교 특별 예술 부서 운영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돈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 집이 멀어 못 오는 친구들에게는 차량이 제공되거나 교통비가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바이올린이 없는 친구들에게는 바이올린을 빌려줄 수 있어야 하며, 우리 학교에 밴드부가 없어 배울 수 없다면 옆 학교에 가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창의체험 시간에 학년, 학군별로 예술 동아리를 운영한다면 모든 학생들이 원하는 활동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음악, 미술 시간에는 이런 모든 예술 활동의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원초적인 요소들을 활용해서 노래하고 연주하고 그리고 만들고 표현한다. 혼자도 하고 여럿이서도 해본다. 노래하며 그림을 그릴수도 있고, 춤을 추며 악기를 연주할 수도 있다. 연기와 음악을 합치면서 생활 소품을 사용한다. 모든 아이들에게 예술 교과 시간은 매우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연극과 음악, 미술이 다른 교과와 함께 자유로이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학생과 교사가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주인이라면 학교의 예산과 교사의 역량이 방과후등의 선택 영역과 교과 등의 공통 영역 중 어디에 집중되어야 할 것인가? 예를 들어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예산을 100만원 책정하고, 담당교사를 두 명을 두었다면 이 예산과 교사의 업무는 선택영역에 얼마만큼,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통 영역에 얼마만큼 투입되어야 할까?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아직 우리는 이런 고민마저도 낯설다.

아무튼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주인은 사업이 아닌 학생과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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